제6회 다링안심캠페인 2019.06.15(토) 오전 10:30 광화문 중앙광장
제3회 다링안심캠페인 희망수기

"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

“저 좀 도와주세요!” 이 말을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아빠라는 사람에게 수년 간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아빠의 계속되는 폭행으로 집을 나간 엄마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렇게 지체장애인인 남동생과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의 기분에 따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저는 두 손이 묶인 채로 수치스러운 행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나를 차라리 죽여 달라는 외침은 아빠를 자극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갖은 용기를 내 친척들에게 도움 요청도 해보았지만,
제게 돌아온 건 ‘네가 외로운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는 황당한 설득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른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죽고자 마음을 먹으니 그 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회오리처럼 요동치더군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쯤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게 그리 큰 욕심인걸까?
여러 차례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지요.그때부터였을까요?
분노를 모르고 슬픔이라는 감정에만 머물렀던 제가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저를 짓밟아온 아빠에게 무력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며 아빠가 그간 저질렀던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여러 상담소를 찾아 다니며 하소연했지만,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라는 일관된 답변만 받았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도 저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지요. 꽁꽁 숨기고 싶었던 제 치부가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동안 제 마음의 문은 서서히 닫히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신기하게도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만큼은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 안에 꽁꽁 숨겨왔던 이야기들까지 모두 털어놓게 되더군요. 불행했던 지난날의 상처가 이따금씩
벌어지며 괴로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를 때마다,
염치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무작정 센터에 찾아가 목 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제 일처럼 보듬어주고 매만져주는 센터 선생님을 보며 난생처음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었지요.
 이때부터 저는 제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센터 선생님은 제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간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고,
여러 차례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이제는 어엿한 대학교 졸업반 학생이 되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센터 선생님은 저의 일상 이야기를 들으시며
함께 고민해주시고 눈물을 흘려주시는 참 따뜻한 분이십니다.
또 저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분이시지요. 무더운 여름이나 엄동설한에도
명절같이 특별한 날이면 직접 집까지 찾아오셔서 선물을 전해주셨고, 얼마 전에는 다가오는
간호사 국가고시를 대비한 문제집도 한 가득 안겨주셨습니다.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랑새의 밤’이라는
행사에 저를 초대해 주셨지요. 또한 다링캠페인과 음악회를 통해 뿌듯함과 감동의 눈물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재회한 엄마는 심한 당뇨병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체장애 2급 진단을 받은 남동생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였으며, 아직 어린 막내 여동생은 안정되지 못한
가정환경에 발달 지체를 보여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좌절하고 있을 때,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그리고 저는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관심 받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제 가족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고요.
사실상 저희 엄마는 여태까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며 속마음을 꽁꽁 숨겨오셨는데,
최근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주최한 음악회에 다녀오신 후 집에서 하루 종일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단순히 ‘음악회의 여운이 많이 남으셨나 보다….’ 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음악회 당시에 찍은 사진을 보니,
오랜 세월 켜켜이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는 듯 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문화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보면서 참 많이 슬펐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난으로 인해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버텨야 하는 저희에게
이런 이벤트를 해주신 것에 대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염치없지만,
저와 같은 피해자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하루를 앞으로도 종종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일정량의 합당한 벌을 받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겠지만, 피해자들은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치유해 주고자 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이 아름다운 사랑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센터의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 역시 좌절을 극복하고 일어서 힘든 삶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실없는 이야기지만,
엄마께 “엄마는 로또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뭐가 하고 싶어요?” 라고 여쭌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이런 질문에 엄마께서는 “당연히 범죄피해자들을 도와줘야지.”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선생님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나가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벼랑 끝에 서있던 저를 기꺼이 꽃 길로 인도해주신 센터 선생님들, 정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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