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다링안심캠페인 2019.06.15(토) 오전 10:30 광화문 중앙광장
제4회 다링안심캠페인 희망수기

“언젠가는 찾아올 희망을 꿈꾸며”

그날도 늘 그렇듯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습니다.
한창 업무를 보던 중 전화벨이 울려 휴대폰을 보니 발신자는 어머니였습니다.
사무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평소 일찍 주무시기에
저녁 9시 이후에는 전화를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뭔가 불길한 느낌으로 전화를 받으니
평소와는 달리 떨리는 말투로  “미현아,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 지금 의료원에 있는데
좀 내려와야겠다.” 하셨습니다.  평소 병원도 잘 안 가시던 건강한 아버지였기에 의아했지만
회사동료에게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하고 서둘러 주차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또다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의료원에서 치료가 안 될 것 같아 병원으로 가야 된단다.
지금 병원으로 바로 내려와야겠다.” 어머니 목소리는 많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무척 상황이 심각하다 는 걸 직감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위치를 누르는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으며
가슴은 쉴 새 없이 쿵쾅거렸지만 차량 비상등을 켠 후 1차선을 달리면서 가는 내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새벽 2시경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더니 대기실에 어머니와 친척분들이 와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울먹이며 손을 잡고 응급실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10개가 넘는 링거를
몸 여기저기 꽂고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몸 전체가 부어있었고, 배도 많이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응급실 과장님께서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머릿속은 혼란을 넘어서 그냥 백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응급실 과장님에게 물었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하면 살 수 있느냐고.’
그러나 고개를 저으시며 이송 중 사망확률이 너무 높다고 하셨습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지만
대화 도중 아버지에게 심정지가 왔습니다. ‘평화스럽던 시골 마을 회관에서 누가 무엇 때문에 무슨 억하심정으로
농약이 든 소주를 아버지에게 마시도록 하여 이런 고통을 주는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새벽 내내 심정지와 심폐소생을 반복하던 아버지의 생명신호가 꺼졌고 의사 선생님은 사망선고를 하였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 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고 그저 한 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잃을까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기만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나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셨으나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늘 받기 만한 아버지의 사랑을 갚을 길이 없다는 죄책감과 죄송함에 영정 사진 앞에서 한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보낸 후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집안 곳곳 아버지 의 흔적에 울다 쓰러지시기를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믿지를 못하셨고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억장이 무너졌고,
가슴을 후벼 파듯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너무 억울했고 분했지만 아픈 어머니를 앞에 두고 표현을 할 수 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습니다. 
가해자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는 계속되는 사이에 어머니와 나는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던 날 집 마당에 낯선 분들이 계셨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나오셨다며 명함을 건네며 상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으며 어머니 또한 외부인을 만나길 원하지 않으셔서
다음에 다시 방문해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며칠이 흐르고 센터에서 직원분이 다시 방문해주셨습니다.
처음 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 도 도움을 주시고자 하시는 마음이
대화 속에서 느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낀 저에게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원해주셨으며,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편히 계실 수 있도록 거주지의 환경도 개선 해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심리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해주셨고, 수시로 전화를 주셔서 어머니 상태를 체크하고
최대한 도와주시려고 애써주셨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라는 단체를 전혀 몰랐던 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너무나 고마움을 많이 느낌과 동시에 조금씩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논을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센터에서 연결해주신 멘토님과의 만남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상담을 통해 심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버지의 죽음과 상황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 채
아버지의 흔적이 많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어서,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심리치료가 필요하여 센터에서 상담을 계속 받으시고, 한글까지 깨우쳐 주셔서
이제 책도 마음대로 읽게 되셨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생활환경에 조금씩 적응 과정을 거쳐
건강 또한 많이 회복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되자 저 또한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고
센터 에서는 변함없이 저와 어머니를 친가족처럼 챙겨주셨습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얼굴에 웃음을 띄울 수 있는 날들 이 조금씩 생길 만큼 어머니도 저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머니가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라고 처음에 생각했던 제게는 어머니의 웃음이 희망으로 보여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버지 산소에 들를 예정입니다. 아버지께 어머니가 많이 좋아지셨다고, 너무 걱정하시지 말라고,
하늘에서 근심걱정 말고 웃으며 지켜봐 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드릴 것입니다.범죄피해자……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하는 일을 현실로 겪고 나니 글로써는 표현이 안 될 만큼
너무 막막하고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며 마음속은 분노와 증오,
원망으로 가득 차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고통에서 꺼내주신 분들이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분들입니다.
센터 직원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직 모든 상처가 치유가 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완쾌가 될 것 이라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희망을 심어주신 센터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범죄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기에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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